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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박은식, 민족정신을 지킨 독립운동 사상가의 길

by 금융지식·IT 트렌드랩 2025. 8. 14.

박은식, 민족정신을 지킨 독립운동 사상가의 길

 


박은식은 일제강점기의 혼란 속에서도 민족의 얼을 지키고자 민족정신을 외친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역사학자였다. 그는 ‘나라를 빼앗겨도 정신은 빼앗길 수 없다’는 신념으로, 역사 속 인물들을 재조명하고 민족혼을 강조하는 글들을 써내려갔다. 박은식의 사상과 활동은 독립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으며, 오늘날에도 민족주의 역사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박은식

근대 지식인으로서의 성장과 사상적 전환

 

박은식은 1859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교적 교육을 받았으며, 과거 제도에 익숙한 전통적 지식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을 지켜보며 박은식은 큰 충격을 받는다. 특히 을미사변과 단발령은 그에게 사상적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는 유교적 질서에 기반한 구체제의 한계를 자각하고,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후 박은식은 유교적 민본주의와 근대 민족주의를 융합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가 강조한 ‘국혼(國魂)’은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민족이 지켜야 할 정신적 중심이었다. 그는 “형체는 나라의 집이요, 정신은 나라의 근본이다”라며, 국권이 침탈당해도 정신을 지켜야 함을 역설했다.

 


 

민족정신을 담은 역사서 집필

 

박은식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역사서를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시킨 점이다. 그는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닌,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정신’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있다.

 

《한국통사》는 대한제국의 멸망 과정을 서술하면서, 조선 정부의 무능함뿐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고발한 역사서였다. 당시 대부분의 역사서가 한문으로 쓰였던 것과 달리, 이 책은 한글로 집필되어 일반 국민들도 쉽게 읽고 민족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투쟁과 정신을 기록한 책이다. 박은식은 이를 통해 독립운동이 일회성 사건이 아닌, 민족정신의 지속적 발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두 책은 모두 ‘혼’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역사의 주체를 민중과 정신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였다.

 


 

임시정부 주석으로서의 역할

 

1911년 국권을 상실한 이후 박은식은 중국으로 망명한다. 이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1925년 이승만이 탄핵된 뒤 제2대 임시정부 주석이 된다. 그는 실질적 권한이 미비한 상황에서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박은식은 임시정부 내에서도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외교보다 자강을 중시했던 그는, 무장투쟁과 독립정신 고취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방향을 잡고자 했다. 당시 임시정부의 재정은 열악했지만, 그는 끝까지 조선의 혼이 꺾이지 않도록 사상적 지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박은식 사상의 핵심, 왜 ‘국혼’인가?

 

박은식은 “혼이 살아 있으면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국혼’은 단순한 추상 개념이 아닌, 실천적 사명이었다. 국혼은 곧 민족정신이자, 역사의 연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었다. 민중의 투쟁, 의병의 저항, 독립군의 피는 곧 국혼의 표현이었으며, 이러한 ‘정신’이 있는 한 민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의 국혼론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실천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는 모든 독립운동은 이 국혼을 중심에 둘 때 의미가 있으며, 민족의 해방은 정신적 자각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민족주의 역사학의 선구자로 남다

 

박은식은 역사학자로서도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식민사관에 대항하여 민족 중심의 사관을 정립한 그는, 후에 신채호 등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한 식민사학의 왜곡을 경계했고, 민족의 주체성을 중심에 둔 서술 방식을 고수했다.

 

또한 그는 고문헌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기존의 왕조 중심 서술에서 벗어나 민중의 역할과 정신을 강조했다. 그의 역사학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민족 자각의 도구였고 독립운동의 이론적 무기였다.

 


 

결론: 박은식이 남긴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박은식은 우리 역사 속에서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그는 펜으로 싸운 독립운동가였으며, 정신의 가치를 누구보다 앞세운 지식인이었다. 나라를 빼앗겨도 민족의 혼만은 지켜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의 역사관, 독립정신, 그리고 국혼 사상은 여전히 우리의 정체성을 성찰하게 한다. 박은식이 걸어간 길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자취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