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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4

철종, 강화도령에서 조선의 왕으로: 비운의 군주가 남긴 짧은 흔적 천한 신분과 가난 속에서 자란 왕자조선 제25대 국왕 철종(哲宗, 1831~1864)은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을 이룬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원래 그의 이름은 이원범(李元範)으로, 태어난 곳은 한성부 경행방(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대)입니다. 전계대원군의 아들로 방계 혈통에 불과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권력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철종은 한때 정치적 위기에 휘말려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14세부터 약 5년간 그곳에서 은거했습니다. 강화도 시절 그는 나무를 해 생계를 유지하며 사람들로부터 ‘강화도령’으로 불렸습니다. 이런 이력 때문에 조선 후기 기록에는 그가 종살이까지 했다는 소문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 민심의 동정과 안타까움을 반영한 이야기로, 실제로는.. 2025. 8. 28.
인조, 혼란과 굴욕 속에서도 조선 후기의 기틀을 다진 군주 어린 시절,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소년조선 제16대 국왕 인조(仁祖, 1595~1649)는 왕위 계승 서열에서도 멀리 떨어진 인물이었습니다. 본명은 이종(李倧), 자는 천윤(天胤) 또는 화백(和伯)으로, 선조의 맏손자이자 정원군(훗날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5년 황해도 해주행궁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천윤’이라는 아명도 선조가 지어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 인조의 집안은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정권을 장악한 북인은 선조의 서자 출신 광해군을 정통으로 세우기 위해 정적을 제거해 나갔고, 결국 1615년 인조의 이복동생 능창대군이 역모에 연루되어 유배지에서 자결하는 비극.. 2025. 8. 28.
이덕무, 책을 사랑한 조선 지식인의 초상 이덕무, 책을 사랑한 조선 지식인의 초상 조선 후기, 권력과 명예보다는 지식과 내면의 수양에 몰두했던 한 사림이 있었다. 그는 높은 벼슬이나 장대한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독서와 사유로 한 시대의 지식문화를 풍요롭게 한 조선의 ‘책벌레’였다. 이름은 이덕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이자, 독서가, 문장가였다.겉으로는 검소하고 유약해 보였지만, 그의 글에는 세상과 인간,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날카로운 지성이 살아 숨 쉬었다. 서얼의 울타리를 넘어 이덕무는 1741년(영조 17년) 한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양반이었으나, 아버지가 서얼(庶孼: 첩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그 역시 중인 이하로 차별받는 신분이었다. 이 시기 조선 사회는 아직까지도 뿌리 깊은 신분제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이덕무가 .. 2025. 8. 17.
김만덕, 조선의 기근을 구한 제주 여상인의 기적 김만덕, 조선의 기근을 구한 제주 여상인의 기적 김만덕은 조선 후기에 제주에서 태어나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여성 상인이자, 생명을 살린 구휼의 아이콘으로 기억됩니다. 김만덕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전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하여 굶주리는 백성을 살렸고, 조선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은 보기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천민에서 상단의 리더로, 김만덕의 출발 김만덕은 1739년경 제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래 이름은 덕이라는 설이 있으나, ‘만덕’은 훗날 공을 인정받으며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양인 신분임에도 기녀로 전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김만덕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삶을 바꾸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기녀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 2025. 8. 15.